-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감독이 광고도 찍었다구요?
윤카피의
코멘트
(경고)해당 레터에는 애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말 아시죠? 이 말은 클라이언트나 상사가 요구하는 말도 안되는 요청을 말할 때 흔히 쓰는 비유잖아요. 저도 이 말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요, 기생충과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줄여서 에에올)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답니다. 좋은 작품에는 분명히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점이 있어요. 뜨겁고도 차가운, 전혀 공존할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함께 있는 걸 가능하게 만들어 작품 자체에 풍부한 생명력이 깃들도록 만드는거죠. 영화 에에올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히 희망적이지만 그 희망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지난하고 어이없기까지 합니다. 지리멸렬한 삶의 순간들을 쌓아올려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는 건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뜻 아닐까요? 물론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아카데미에서 상을 준거겠고요.
에에올은 이번 아카데미에서 무려 7관왕을 수상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의 감독, 다니엘스가 광고를 찍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요. 그래서 오늘 뉴스레터는 다니엘스 감독의 광고를 모아왔어요. 다니엘스 감독은 이름이 같은 두 분이 결성해 활동하는 듀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다니엘s래요. 광고를 찾아보면서 생각보다 눈에 익은 광고들이 있어서 재밌었어요. 함께 감상해주세요.
iPhone X - Fly market
다니엘스 감독의 첫 작품은 이 애플 광고로 시작해 볼까 해요. 이 광고 좋아하는 분들 참 많죠? 저도 한동안 회의실에서 레퍼런스로 참 많이 봤던 광고인데요. 회의실에서 하도 자주 봐서 한국에서 온에어 한 줄 알았는데, 요 몇달 사이 애플페이 한국 런칭 소식이 전해지는 걸 보니 아닌가 봐요. 이 광고 런칭 배경은 당시 젊은 세대들이 빈티지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서, 이런 트렌디한 제품을 트렌디한 결제 수단, 애플페이로 결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의도로 제작되었대요. 에에올 감독이 이 광고를 만들었다는 걸 알고 다시 보니, 감독 특유의 산란하지만 풍부한 아이디어가 녹아있는 연출이 느껴져서 더 재밌었어요.
Weetabix - Dancer
에에올 영화 중에서 어떤 장면을 가장 좋아하세요? 저는 초반부, 조세국에서 주인공 에블린과 주인공의 딸 조이가 빌런 조부 투바키로서 엄마와 마주하는 장면과 후반부, 조세국에 에브리띵 베이글 앞에서 조부 투바키와 그 수하들을 주인공 에블린이 다투는 장면이에요. 일반적으로 이런 액션씬에선 박진감의 연출을 위해 주변 사물이 부서지거나 화려하게 흐트러지는 것을 세부 디테일로 활용하곤 하는데, 이런 것들을 멀티버스라는 컨셉에 맞춰 순간순간 뜬금없는 사물(오리털이나 젤리같은)로 화려하게 흩어지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제가 알록달록한 걸 좋아해서 더 그랬고요. 그런 감독님의 성향이 바로 이 광고에도 녹아 있어요. 이 광고는 다니엘스 감독의 광고 입봉작이라고 합니다. 이 광고를 찍으려고 런던으로 가야 했는데 이 때문에 런던에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네요. 다니엘스 감독은 유럽의 한 레모네이드 광고에서 자신의 이 시리얼 광고를 레퍼런스 삼아 광고를 찍은걸 알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고 해요. 레퍼런스가 되는 광고를 찍은 셈이네요.
Nike - Unlimited You
다니엘스 감독은 에에올을 찍기 전, 장편 영화 <스위스 아미 맨>을 찍었는데, 영화를 찍고 나니 돈이 똑 떨어졌대요. 그래서 광고를 찍기로 결심하십니다😅 광고주는 바로 나이키. 이 나이키 광고는 장편 영화 예산의 거의 3배나 달하는 예산으로 촬영됐어요. 다니엘스 감독은 이 나이키 광고를 찍을 때 자신들이 원하는 연출 방향을 존중 받았다고 하는데, 이게 광고 업계에서 흔치 않은 일이라 기억에 남는대요. 외국의 광고 환경도 딱히 다르진 않은가 봐요. 예산은 어마어마하지만요.
이 광고는 주인공 에블린이 버스 점프하는 장면들의 느낌이 떠올랐어요. 여러 차원의 에블린이 서로의 능력을 조응하고 공유하는 장면이요. 이 광고에서도 단순 컷편집이 아니라 관련 오브제를 브릿지를 사용한다든지, 비슷한 상황을 연결하는 방식이 에에올에서 유사하게 사용되었죠? 광고가 끝난 줄 알았는데, 나이키의 슬로건 Just do it 자막을 부숴버리면서 감상자의 기대를 벗어나 버리는 방식도 재밌었고요. 에에올에서도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다가 갑자기 영화 후반이 진행되는 연출이 있었잖아요. 에에올에서 쓰인 여러가지 연출을 이 광고에서 미리 실험한 것처럼도 보여집니다.
영화의 바깥을 완성해주는 두 배우의 수상 소감
저는 이 영화의 내적 완결성도 대단했지만, 영화의 바깥 맥락을 완성해주는 건 두 주연 배우의 수상 소감이라 생각했어요. 양자경 배우는 자신이 여자 배우라서 나이를 먹을 수록 기회가 더 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고, 키 호이 콴 배우는 아역 시절 스티븐 스필버그와 성공했던 작품 이후, 거의 이십 년 동안 동안 새로운 기회가 오지 않아서 걱정했다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배우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순간을 기다렸어요. 각종 온라인 매체와 SNS로 슈퍼스타가 단 15초 만에도 태어나는 세상에서 20년 동안 자신의 기회를 기다린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요?